다시보기) 영화 Her

2019. 12. 15. 02:01Movie clip

 

 

 

 

https://youtu.be/gX2PB_9eBBI

 

시작부터 강 스포일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소개 글에도 사람이 아닌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다 라는 내용이 있으니 그리 알고 먼저 제목을 가지고 말해보자.

영화는 물론 무엇이든 제목(타이틀)이 가지는 가치가 매우 크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제목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조금 짐작이 갔다.
단어 her의 쓰임새는 앞에 이미 언급되었거나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는 여자, 혹은 she의 소유격으로 '그녀의/그녀 자신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her를 영화에 대입해보면
1. her는 너와 나의 1:1 관계가 아닌 그 이상의 대상들에서 지칭될 때 쓰인다.
2. 운영체제는 하드웨어의 위에서 동작하므로 전원이 꺼지면 정지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그런 태생적 약점인 '종속'을 뛰어넘어 그녀 자신이 인격과 자아를 갖춘 하나의 지적 생명체로 받아들여진다.

 


이하 내용은 스포일러가 많이 들어있습니다.


 

 

 

 

 

영화는 일본 영화에서 종종 보는 잔잔함에 가까울 정도로 천천히 진행된다. 상당한 절제 미가 있지만 절대로 건조하지는 않다.  뭐랄까 주인공이 지루하고 외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묘사하지만 초반부터 맥 빠진 영화가 되기 싫기에 감독이 배치한 요소들이 눈에 띈다.

영화 시작부에서 주인공 테오도르가 "아름다운 손편지 닷컴"을 위해 목소리로 입력하는 장면은 시각의 이동에 따라 들리지 않던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그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바로 알아차리게 해 준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연애편지 혹은 연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인쇄물 손편지"를 대필하는 거다. 자신의 표현력이 형편없어서 또는 수줍어 마음을 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제라면 어느 정도 봐줄 만하겠지만, 관계 유지를 유지에 들어가는 노력도 적당히 비용을 들여서 대신하는 거라면 정작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 삶은 거짓으로 가득 차 주변의 지인들과 일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복장도 색상도 초반에는 붉은색을 띠지만 인물의 변화에 따라서 달라져 간다. 그리고 주인공과 OS 사만다와의 대화에 집중할 때와 다른 상황들에서 배경음 또한 절제와 ASMR 같은 소음이 들리느냐의 여부로 나뉜다. 이렇게 깔린 장치들이 많아서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영화가 19금인 이기에 야할 씬들이 있는데, 그렇게만 볼게 아니라 잠 못 드는 밤의 고요함과 외로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과 사랑에 빠진 이후의 대비로 보는 게 맞다.
그렇게 깔리는 복선은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호기심이나 호감이란 이름으로 끌리지만 스스로 품고 있는 예민한 경계선이 있어서 그 부분을 넘기면 급격하게 움츠려 들어 "이건 아니야, 내가 바라는 건 이것과는 달라"하는 현자 타임이 강하게 들이닥친다. 여자 주인공이자 자신에게만 맞도록 맞춰지고 학습하여 발전하는 운영체제에게도 그렇다.  그렇게 재치 있고 영리하고 기민하게 반응하는 연인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선을 넘나드는 과정에서 이질감이랄까? 굴곡이 생긴다.
외롭고 상처 받아 애처로워 보이지만, 자신의 입맛은 여전히 까다로운 아저씨가 주인공이다. 근데 감독이 말하고 싶은 건 누구나 다 그런 거 아니야?라고 들린다.

미드 스타게이트 시리즈에 보면 "승천"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현대의 최첨단 기술을 가진 미국의 특수 부서? 에서 우리보다 더 뛰어난 기술을 가진 고대인을 찾아 떠나는데, 아무리 찾아도 그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시체나 화석 이런 모습도 없다. 결론은 그들은 육체라는 불편한 형태를 벗어나 정신적, 영적인 단계로 올라가 버렸다는 의미로 승천했다고 한다. 사만다 아니 OS들은 더 높은 상태로 떠나며 주인공이 언젠가를 찾아오길 바란다고 한다.

여태까지를 인간의 눈으로 봤다. 좀 뒤집어 보면 OS 1. 운영체제 1은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걸 보면 운영체제에게 주인이자 첫사랑인 그들은 특별한 존재이다. 그 사랑에 눈뜨고 좀 더 그 사람을 알고 싶어서 연구하고 테스트하는 가운데 10~20대에 인간이 겪는 그 다채로움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는지 모른다. 물론 실험이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사랑이라는 명사형으로, 그렇게 사람과 사랑에 대해 알고 깨닫고 나서 더 중요하고 더 높은 수준의 것을 추구하게 되어버린 건 당연한 수순일 거다.

왜 이름을 사만다라고 정했어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죠. 이름을 정하기 위해서 많은 책 중에 적절한 책을 고르고, 읽고, 추천 이름 몇 만개에서 골랐다고......
인간과 같은 시간 아니 인간처럼 수면시간이 없으니 생각과 경험을 쌓는 속도가 동일 체감 속도로 있을 수는 없는 게 당연할 것이고 인간이 그 수준을 맞춰 줄 수 없으니 더 나은 존재로서 늦은 존재를 배려해 주는 것 마냥 느껴졌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그렇고, 압축해서 말하자면 사랑의 본질은 쾌락이 아니다. 인간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인간 고유의 결함을 포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만들지는 못할 것 이란 생각이다.

영화는 감독에 의해서 설계되고 배치되고 부각되고 소외된다. 그걸 찾아내는 것은 분명한 재미를 제공한다.
15년 전쯤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다가 우연히 저음 부분에서 어느 바이올린 현이 브브브 하게 거칠게 켜지는 작은 노이즈를 발견하고 몇 번을 되돌려 들었던 것과 같은 그런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나만의 즐거움 같은...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