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경청'을 읽고

2021. 2. 2. 19:02Books

책 `경청`은 두괄식으로 말하자면, 듣고 있다고 생각하던 불통인이 듣는 기술을 배우고 달인이 되어 상대가 자연스럽게 말하게 하는 경지에 다다르는 소설이다.

물론 주인공 이토벤이 병으로 인해 죽어가기 때문에 최후의 경지에 들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신묘하게 주변을 바꿔가는 힘을 보여준다.

​ 무언가 원하는 바를 얻어 낼 수 있는 스킬, 능력을 염원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구나 현대인이라면 더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족집게 강의를 해주면 더 좋은 일일 것이다. - 서점의 베스트셀러 중 상당수가 자기 계발서이다. - 몇만 원 이내의 작은 비용 투자로 비결을 얻을 수 있다면 분명 남는 장사이다.

나는 기독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다. 기독교는 분명 서양에서 출발했을 텐데, 내가 느끼는 나의 종교는 불교의 구도에 가까운 신에 대한 끝없는 구애의 반복이다. 모든 상황과 조건을 배제하고 옳은 방향과 방법으로 나와 신의 거리를 가까이 또는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노력하면 화두가 주어지고, 멀어지면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럽게 된다. 그건 단 1초면 가능하다.
평온함을 누리기 위한 종교인데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해선지 때로는 불편하기도 하다.
​그런 종교와는 반대로 우리는 현실의 삶을 살아가기에 모두 정보분석의 전문가가 되어 있다.​

"하루 동안 접하는 CCTV의 수 83개(2011년 한국인 기준), 광고의 수 3천 개 그중 기억에 남는 광고 9개(조선비즈 2015년 글 기준), 2020년 8월 한 달 동안 새로 출시한 안드로이드 앱 11만 1천 개…."

4살 된 아들이 자신의 유불리를 따져서 말을 바꾸거나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는 걸 보면, 눈에 들어오는 걸 어떻게 해야겠다 하는 판단은 저절로 길러지는 것이다.
그렇게 성장하고 나면 우리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조건반사에 가까울 만큼 자동으로 분류하고 그런데? 뭘 원해?의 흐름으로 빠져버리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소통을 한다고 하지만 그 방법은 강제에 가까운 불통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주인공 이토벤도 초반엔 그런 인물로 그려진다. ​
한 사람의 삶, 그것도 얼마 남지 않은 삶이기에 치열하다 못해 처절하게 사는 사람의 이야기다.
나도 아버지이고, 아들과 뺨을 비비고 간지럽히며 놀아주기에 작중 주인공 이토벤보다는 나은 수준이긴 하다. 
수준으로 가늠해보면 아이의 성장을 소소하게 들여다보며 웃지만 정작 아이를 이해하는 데에는 한 발 떨어진 관찰자에 가깝지 않을까?

아이의 세상에 아이패드와 유튜브의 등장으로 아이가 혼자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늘었고, 그 옆에서 여유가 생긴 나 역시 스마트폰을 뒤적이던 어느 날 스마트 폰에서 눈을 떼고 아들에게 "비행기 태워 줄까?" 하는 한 마디에 아이의 표정이 얼마나 밝아지는지 알게 되면서이다. 많이 부끄러웠다.

​인간과 달리 동물들은 상처나 장애를 입었다고 해서 혐오하거나 따돌리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토벤은 발달이 더딘 아들을 보며 어떤 생각이었을까? 자신에게 원인이 있었을까 싶어 미웠을까?

이토벤은 조율이 안 된 강원도 수제 현악기 제조팀에 새로 불협화음을 가져오는 존재이기에 외면당하지만, 말하지 않고 행동으로 자신의 처지를 알린다. 혼나고 깨지는 가운데 발전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그를 다시 보게 되고 관심을 둔다.

그 무던한 노력이 실수할지언정 사람들의 신뢰를 하게 해주는 첫걸음이 돼준다. 그렇게 이토벤을 통해서 개성 강한 부서원의 불협화음이 조율되고, 서로가 대화의 타이밍을 조율하고 생각을 비슷하게 가지게 되어 같은 주제로 움직이게 된다. 여기까지가 책에서 찾을 수 있는 `방법`이다.

신비롭게 산에서 만난 할아버지를 통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름대로 득도의 경지에 도달한 것으로 표현되는 것은 방법이 없다. - 참선이나 명상을 하는 것이 묘사되어 있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 그저 마음 가는 길은 죽 곧은길로 표현되는 것 같았다. 경청을 읽으면서 느꼈던 자극은 거기까지고 마치 헨젤과 그레텔에서 길잡이로 떨군 빵조각이 얼마 안 가 끊긴듯한 기분을 다시금 느꼈다. ​

이쯤 되면 종교에서 절대자를 접견하는 방법이 꿈이나 목소리, 우연히 접한 페이지의 한 줄과 같이 개인마다 편차를 인정해야 하나 보다.

그럼 지금의 나는 내 수준에 맞는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느리거든요. (웃음)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아 그렇군요."를 그대로 해나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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