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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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 나약한
나 자신은 나약하기보단 부끄럼이 큰 것. 진짜 나약한 것은 숨는 것. 부끄러움은 말 못 하는 안쓰러움이 있지만, 숨는 나약함은 스스로를 속이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게 한다. 말해놓고 나면 되돌릴 수 없고 모든 게 끝난다고 세뇌한다. 후회도, 회개도, 돌아갈 마음까지도 포기할 수 있으니 나를 좀 내버려 둬의 최상급 표현.
2019.12.16 -
[씀] 조금
끈기의 편에선 조금은 성취를 위한 응원자. 유혹의 편에선 조금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시발점.친구 격인 조급이 조금을 불러오기도 혹은 그 반대의 순서가 되기도 한다.그렇다고 조금이 나쁜 이미지 이기만 한건 아니다. "이건 아닌데?"에서의 조금은 함정에 빠져들기 전에 작동해 주니깐
2019.12.15 -
[씀] 미리
미리라는 단어에는 두 개의 숨겨진 단어가 있다. '챙겨두다'와 '쌓아두다' 앞을 내다보고 대비하다. 의 좋은 쪽이 챙겨두다 이고, 앞을 염려하고 고민하다. 의 나쁜 쪽이 스스로 가야 할 길에 돌을 쌓아두는 것이다. 이렇게 미리의 어감에는 선견지명의 현명함과 고민의 진통이 같이 붙어있다.복잡한 현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들어오는 정보를 탁탁 재단할 수 있는 능력과 미뤄놓고 적당할 때 쓰겠지 하고 수집해 놓는 습성이 같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리 쌓이는 양을 정리해주지 않으면 유효기간 지난 아쉬움과 돌인지 옥석인지 구분하는 능력만 더 미덥지 못하게 된다.
2019.12.15 -
[씀] 못하는 일
못하는 일보다는 안 하는 일 정확히는 꺼려지는 일. 몸치인 나에게 정기적으로 있던 무도회는 참석하기 싫었던 일. 춤을 추는 건 못하는 일. 무엇보다 가지 않은 길였으니, 앞으로도 결국 외면받은 길이다. 그런데 어찌아랴? 인생에 절대는 없으므로 나이 들어 영화 여인의 향기를 우연히 보고 앞도 못 보는 사람이 차를 몰고 춤을 추는 것에 질투를 느낄지... 그러니 앞으로는 못하는 일보다는 안 했던 일로 하자
2019.12.15 -
[씀] 낡은 책
낡았다는 건 지어진 지 오래되었다는 조건과 함께 소중하게든 험하게든 쓰였다는 증거다. 때로 안 어울리는 조합; 빈곤해 보이는 사람이 입고 있는 고급 슈트, 부유해 보이는 사람이 소중히 다루는 낡은 물건. 들이 있다. 하지만 책은 외관의 상태와 무관하게 얼마나 많은 지혜를 나눠주었는가로만 나뉜다. 낡은 책은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혹은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였다는 뜻이므로 명예의 전당에 모실만 하다. 단, 역설적으로 싫어하는 누군가의 책은 뜨거움을 견뎌내야 했던 냄비받침으로의 역할만 강요당하고 은퇴하기도 한다. 그 역시 보듬어주고픈 대상이다.
2019.12.15 -
[씀] 여기
놀랄만한 사건이 발생하면 모두의 시선이 모인다. 주변의 사람들과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싫거나 좋은 응답을 내놓게 된다. '여기'는 장소 또는 집중해 주길 바라는 무언가를 가리키는데, 거기엔 상대도 함께 바라봐 주길 바라는 의지도 들어있다. 한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왜 손가락을 보는가?"처럼 상대와 나의 관심은 일치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마치 읽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글이 입질만 또는 외면당하는 것도 같을 것이다.
2019.12.15